사과나무 활동
activity

문의전화  010-4466-7636

웹진

HOME > 사과나무 활동 > 웹진

제목 누가 엠마 보바리를 죽였나 : 『보바리 부인』과 랑시에르의 ‘문자적 민주주의’_박희성 등록일 2023.06.12 14:33
글쓴이 관리자 조회 120
누가 엠마 보바리를 죽였는가?" 박희성(사과나무 연구원,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과정) 

귀스타프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은 평범한 농민의 딸이었던 엠마가 불륜과 사치 끝에 빚더미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과연 이러한 비극적 결말은 부정한 행실의 여자에게 던지는 엄중한 경고일까? 혹은 욕망을 억눌린 여성이 잘못된 방식으로 이를 분출하다 파국에 치달은 시대적 비극일까? 자크 랑시에르는 『보바리 부인』에 대해 흔히 행해졌던 이러한 사회적 관점의 비평에 반대하며, 문학과 예술에 고유한 담론 내부에서 이 작품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랑시에르는 「엠마 보바리의 처형」이라는 제목의 글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왜 엠마 보바리는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 이렇게 던져진 질문은 외양상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있다 (…) 사실에 반하여 왜 엠마가 살해를 당했냐고 묻는 식으로 문제를 뒤튼 것은 우리가 이 답변들의 근거가 되는 논리에 만족할 수 없고, 정치적 설명으로서 이 답변들이 주는 인과관계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상정한다. (…) 따라서 다음과 같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만일 엠마가 죽는다면 그것은 작가 플로베르가 한 여인의 죽음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누가 엠마 보바리를 죽였나”라고 마찬가지로 잘못되어 보이는 질문을 던진다면, 랑시에르의 대답은 작가 플로베르를 살해자로 지목한다. 그리고 랑시에르가 추론하는, 플로베르가 엠마 보바리를 죽인 이유는 그 어떤 사회적인 관심에서가 아니라, ‘문학과 예술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엠마 보바리는 소설과 같은 삶을 동경해 불륜을 저지른, 즉 자신의 삶을 문학으로 만들려고 한 인물이다. 이와 같은 인물상은 플로베르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더 먼 과거에는 문학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예술 작품들을 향유하는 것도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신분의 경계를 무너뜨린 민주주의의 광풍은 문학에도 불어닥쳐, 그 어떤 것이라도 문학의 소재가 될 수 있게 되었다. 랑시에르는 이러한 무제한적 경향을 문학에서의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농민의 딸 엠마가 스스로 문학의 주인공이 되고자 함 역시 이러한, 문학적 – 혹은 문자적 민주주의에 의한 것이었다. 
 문자적 민주주의는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기도 했지만, 작가들 입장에서 달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무제한적인 소재의 자유는 결국 무엇이 문학이고 무엇이 문학이 아닌지 그 경계마저 무너뜨려, 문학의 영역이 성립 불가능하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여러 방법으로 문자적 민주주의의 바람에 맞서, 문학을 구획하는 새로운 경계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그렇다면, 플로베르가 엠마 보바리를 죽임은, 문자적 민주주의의 화신으로서의 엠마에 대한 공격인가? 단순히 그렇게 도식화하기에는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다. 우선 엠마가 ‘모든 것이 문학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거나 실천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엠마를 죽이는 것으로 문학의 고유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문학과 민주주의를 둘러싼 랑시에르의 이론을 정리하여, 이에 따라 엠마 보바리라는 인물을 평가하고 『보바리 부인』이 문학작품으로서 가지는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이 글의 전문은 첨부 파일을 내려 받아 읽을 수 있습니다.
파일첨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