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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여의 경제와 새로운 정치경제학이라는 화두_강태경 연구원 등록일 2023.06.29 16:59
글쓴이 관리자 조회 112

기여의 경제와 새로운 정치경제학이라는 화두: 『자동화 사회1』과 『새로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를 중심으로 (각주가 포함된 글은 첨부파일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사과나무연구위원 강태경

인공지능, 기계학습, 설비의 자동화,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의 일상화는 우리의 생활과 경제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였다. 2010년대 가장 강력한 자본으로 정보 기술(Information Technology) 기업의 대표주자들인 FAANG(Facebook, Apple, Amazon, Netflix, Google)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 기업들은 플랫폼을 장악하면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막대한 정보를 수집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생활패턴과 사고방식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보기술의 고도발달은 전 산업과 깊이 연관되어있고, 현실에 작용하는 실질적인 힘이 되었다.

그러나 신기술에 의한 충격으로 우리는 새로운 문제를 맞이했다. 인공지능은 예술활동과 지식노동의 상당한 범위까지 기계가 대체할 수 있게 하였고, 자본의 확장으로 플랫폼에서 일하는 새로운 형식의 노동자집단이 등장했다. 포퓰리스트는 트위터를 통해 대중에게 직접 접근하며, 유튜브의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은 각종 정치 유튜버들과 이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정치를 움직이는 힘을 부여했고, 자극적인 정보로 돈을 버는 사이버렉카들을 시청자들에게 추천하면서 대중의 분노를 자극한다. 영상물로 어린아이의 시선을 묶어두면서, 식사 때도 태블릿으로 영상을 틀어놓고 가족에겐 눈길을 주지 않는 어린이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대중적으로 문해력과 사유능력이 저하되었고, 정신질환이 증가했다. 정치가 양극화 되었고 포퓰리즘이 부상했다. 스티글러(Bernard Stigler)의 시각에선 인간의 사유와 행동이 충동에 사로잡혀 자동화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자동화와 알고리즘, 노동. 이 세 가지 키워드를 내건 책 자동화 사회 1: 알고리즘 인문학과 노동의 미래는 이런 현상을 관통하는 기제의 핵심을 기술 변화, 특히 인간의 기록기술('그램화''3차 파지')의 고도 발전과 기록된 논리를 기계가 현실에서 구현하는 자동화에서 찾고,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개발과 새로운 사회 건설을 주장하는 담대한 책이다. 그는 이론적 자원으로 자크 데리다, 질베르 시몽동, 프로이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 등을 참조하며 현대의 기술적 변화에 따른 자본주의의 최신 현상으로서 알고리즘의 통치성(토마 베른과 앙투아네트 루브루아) 논의와 24/7 자본주의(조너선 크레리)의 논의를 결합한다. 그리고 현대의 인류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구성적 노동이 가치를 인정받는 새로운 경제원리인 기여의 경제를 호출한다. 기여의 경제는 인류세의 문제를 극복하는 부인류세(neganthropocene)로 이행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경제학 비판의 결과물이 될 것이라고 본다.

스티글러는 현대 자본주의가 고도로 자동화됨으로써 새로운 것을 구성해내는 인간의 역량은 퇴화시키고 충동과 본능을 자극하는 경제로 전락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로 인해 자본주의가 만든 인류세가 두 가지 한계에 직면했다고 본다. 하나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한계이다. 따라서 소비를 추동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가 도달한 자동화 기술에 의해 대다수 인간의 구성적(Noesis) 역량을 잃어버린 프롤레타리아가 되면서 새로운 경제적 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프로이트의 리비도 경제와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를 연결한다. 자본주의의 시작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입각해서 생물심리적 자동장치인 충동을 억제하고, 부의 축적을 신앙적 구원과 연결함으로서 초개인화의 회로와 결합된 욕망을 만들어냄으로서 경제적 성장의 동력을 만들었지만, 자본 자체의 수익성 추구는 자동화 기술과 결합하여 다시 대중의 충동을 자극하고 그것이 종국에는 경제적 역량을 잠식한다는 의미이다.

스티글러는 역량의 상실이라는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를 재정의했다. 마르크스가 생산수단이 박탈된 이들을 프롤레타리아로 정의했던 것에 반해, 스티글러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자동화된 삶의 논리들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면서 구성적 역량을 잃어버린 이들을 프롤레타리아라고 칭한다. 현대 자본주의 궤적의 결과가 위에서 언급한 한계에 도달한 인류세라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는 파멸을 향해 치닫는 이들이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티글러는 플라톤이 문자를 파르마콘(pharmakon)에 비유했다는 점에 착안한다. 파르마콘은 독이기도 하지만 약이기도 하다. 문자가 망각을 치유하는 약이었으나, 새로운 사회문제를 만들었던 독이 되었고, 결국은 인간이 구성적 역량을 활용하여 문자라는 도구를 재가공했을 때, 새로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스티글러가 보기에 자동화된 기록기술 역시 파르마콘이다. 그는 기록기술의 고도발전이라는 조건 위에서 인간의 초개인화(transindividuation)라는 개념을 통해 구성적 역량을 정치경제적으로 복원하는 논리를 제시한다.

초개인화는 한 인간이 인간집단 속에서 개인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 동일한 인간이라는 공통점에 기반을 두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신의 고유한 영역과 역할을 확보함으로서 사회 속에서 권리와 의무가 존재하는 개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는 과정이다. 스티글러는 인간의 지식이 기록되고 공유될 수 있는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적 조건에서 개인이 구성적 노동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생활을 영위하는 새로운 경제가 초개인화 과정과 결합함으로서 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프롤레타리아화와 초개인화의 논의는 현시대의 경제적 가치의 원천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스티글러가 주장하는 새로운 정치경제학은 인간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구성해내는 역량과 실천이 노동으로서 재정의되어야 하며, 그것이 가치의 원천이 될 수 있다(내지는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문제, 즉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전략에 대한 그의 대답이기도 하다. 현재 인간이 처한 인류세가 앞서 언급한 이유로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실천, 새로운 과학·기술, 새로운 법과 제도, 새로운 미학 등을 만들어내는 구성적 실천에 대중의 역량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것을 구조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경제적 제도(기여의 경제)가 구성되어야 한다. 이행을 위한 구성적 활동 자체를 노동으로 재정의하는 정치경제학적 혁신으로 대중의 구성적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 스티글러는 자동화가 달성하는 고도의 생산력 발전을 기반으로 대중의 기초적인 생활 수준을 구축하여 인민에게 자유로운 시간, 즉 인민의 여가(otium of the people)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여가는 자본주의가 추동했던 자동화된 알고리즘의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성적 역량을 계발하고 발휘할 시간과 기회이다. 프랑스의 공연예술 비정규직을 위한 실업급여인 엥떼르미땅(Intermittent du Spectacle)이 일종의 모델로서 언급된다.

그렇다면 여가를 가진 인간이 자신의 구성적 활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기준은 무엇인가? 스티글러의 논의에서 그것은 부엔트로피(negentropy). 부엔티로피적 노동이란 환경적 무질서에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지식, 인간의 충동을 자극하여 소모시키지 않고 인간 역량을 계발함으로써, 인간 개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와 공존하는 초개인화의 회로를 개발하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그리고 부엔트로피라는 기준 자체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구성적 활동 역시 포함된다. 이런 활동이 사회에 제공한 기여가 가치로 인정받는 경제가 기여의 경제인 것이다.

스티글러는 자동화의 경제적 효과로서 고도의 자동화로 단순 반복적인 노동, 구성적 역량이 필요 없는 패턴이 정해져 있는 노동이 거의 소멸할 것이며 진정한 인간 노동은 구성적 역량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미래전망을 전제하고 있다. 그의 전망을 포함하여 여러 세부 쟁점에서 반박할 가능성은 폭넓게 열려있다. 하지만 그가 제기하는 주장의 핵심이 고도 자동화에 따른 노동의 변화라는 정세에서 어떻게이행할 것인가의 문제를 정치경제학의 혁신과 노동의 재발견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실천, 특히 연구자의 실천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참고문헌>

베르나르 스티글러, 자동화 사회 1: 알고리즘 인문학과 노동의 미래, 서울: 새물결, 2019.

Stiegler, Bernard, For a New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Cambridge: Polit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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